‘대파’와 ‘9’는 생각하지마!

카지노 : 2002년 미국의 국민 가수이자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사진작가 케네스 아델만과 웹사이트 픽토피아닷컴에 5000만 달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지원으로 캘리포니아 해안을 기록한 사진에 자신의 저택이 찍혀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재원 : 이 소송으로 인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사진이 공공연하게 알려지게 됐고, 42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게 됐다. 사생활 노출을 막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사진을 더 많이 퍼뜨리도록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역효과만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정보를 숨기거나, 제거하거나, 검열하려는 시도로 인해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

스트라이샌드 효과는 일상에서 수없이 확인된다. 윤석열 정부들어서 가장 대표적인 예는 '바이든-날리면 사태'다. 윤 대통령의 미국 순방 중 욕설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날리면'이라고 주장하면서 전 국민이 직접 욕설 논란 영상을 찾아서 '청력 테스트'를 하는 역효과만 불렀다.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인천 계양을)가 김건희 씨 일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한 것도 일종의 스트라이샌드 효과다. 고속도로 사업 자체를 없던 일로 했지만, 이로 인해 서울-양평 고속도로는김 씨 일가의 대표적인 특혜 사례로 굳어졌고, 관련 보도만 양산했다.

4·10총선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확인된다. 편파 심의 논란이 일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의 제재가대표적이다.

선방위는 지난 2월 MBC 뉴스의 날씨 예보 화면에 등장한 '파란색 숫자 1'이 서울지역 초미세먼지 농도(1㎍/㎥)를 표시하는 이미지였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기호 '1번'을 연상시킨다며 법정제재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민주당의 상징인 '파란색 1'과 함께 MBC 날씨 예보 화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널리 퍼져, 선방위의 말도 안 되는 편파 심의 사실을 홍보했다.

아울러 선방위의 법정 제재에 위축된 MBC는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의 '9'주년 특집 방송을 결방하기로 했다. 조국혁신당 기호 9번과 숫자가 겹쳐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내부 의견으로 인해 결방 결정을 한 것으로전해졌다. 이를 첫 보도한 <한겨레>에 따르면 9주년 특집은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주제곡 등 9를 강조한 선곡과 연출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SNS엔 '복면가왕 방영 9주년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조국혁신당 기호 '9번'이 크게 강조된 홍보물이 퍼지고 있다.선방위가 '파란색'과 '1'에 대해 비정상적인 정보 검열을 강화한 결과가 비슷한 성향의 조국혁신당 기호 '9'를자기검열하게 만들었고, 국민들에게 조국혁신당의 기호 '9번'만 각인하는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기본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못하게 하면 더 보고 싶은 인간의 '청개구리'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심리 기제가 가장 기초적인 프레임 전략으로 통용된 지 오래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박을 받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TV연설에서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미국 국민들이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사례를 언급하며,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게 하려면 '코끼리'를 언급해선 안 된다고 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대파'도 이러한 대중 심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윤 대통령의 '대파 한 단 875원 합리적' 발언은 정부 고위관료가 물가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범죄심리학자 출신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경기 수원정)가 '875원은 대파 한 뿌리 가격'이라고 옹호하면서,사람들에게 대통령의 '대파 875원' 발언만 각인하는역효과를 불렀다. 여기에 윤 대통령 서울대 법대 79학번 대학동기(김용빈)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이른바 '파틀막(대파를 틀어막음)' 조치는 이같은 역효과를 극대화했다.

선관위는 지난 5~6일 사전투표소에 시민들이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대파'를 들고오자 '정치적 표현물'이라며 투표소 입장 자체를 막았다.이에 시민들은 대파맛 과자, 대파 모양 가방 등을 들고 투표소로 갔다. '대파' 모양 인형을 뜨개질해 가방에 걸고 투표장을 찾은 시민도 있었다. 온라인에선 지금도 각종 대파 인증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대파를 막자 '김건희 씨 명품가방 수수 의혹'을 연상하는 '디올 Dior'이라 써진 종이가방을 들고 투표한 시민도 있었다. 시민들 사이에선 물가관리 실패의 대표적 사례인 '1만원 사과'까지 소환되고 있다.

정부 여당이'입틀막' '칼틀막' '9틀막' '파틀막' 등 각종 '○틀막' 시리즈의 흥행을 멈춰세울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4·10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8일 오전 경기 광주시 태전지구 지원유세에서 "이재명·조국이 200석을 가지고 사면권을 행사하도록 해서 자기 죄를 스스로 사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흥분한한 위원장은 "(이재명·조국은) 200석 가지고 그냥 대통령 탄핵만 할 것 같나"라며 "대한민국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코프가 밝혔듯, 닉슨은 '사기꾼'이 아니라고 한 순간 전국민에게 '사기꾼'이 됐다. 한 위원장이 선거 이틀을 앞두고 '이재명·조국 야당 200석' 발언을 한 순간, 이미 국민들에게 민주당+조국혁신당 200석은 여당 대표가 공인한 의석 수 전망이 됐고, 200석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은 대통령 탄핵이 됐다.곳곳에 '어둠의 민주당원'이 있다는 누군가의 발언이 회자되고 있다.